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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

사람과 사람 사이에 커피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커피가 있다

 

에티오피아 남서쪽 카파(Kaffa) 지역 이름이 커피의 어원이라는 학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데 커피의 각성 효과 때문에 아랍어의 카파, 즉 힘을 뜻하는 단어로써 불렸다. 더불어 오스만제국에서는 카훼(Kahw eh)로 불려지다가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불리게 딘 카페(cafe)라는 힘은 인문의 전반을 이끄는 지위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의 앙드레 김은 커피값을 위해 버스 대신 도보를 선택했다. 미래의 디자이너다운 운치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도면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셔야 한다는 부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데

식후엔 더 흔하지만 한 손에 커피를 든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는 요즘이다. 물론 지독한 커피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은 고전에도 넘쳤는데 커피를 하루에 30잔까지 마셨다는 괴테나 40잔 이상의 커피를 음용했던 볼테르 등, 이들이 저술한 사상과 이론의 탄생에는 커피라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이 동력원에 의한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은 바흐나 슈베르트 등의 음악가와 그 독하다는 터키식 커피를 하루에 50잔이나 마셔댄 발자크 외의 사례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커피에 대한 지성들의 사랑이 지순하고 지극했기에 한때나마 15시간 이상의 글을 쓸 수 있었던 감사의 고백을 발자크는 했던 것이다.

 

나아가 이 힘은 열렬한 사랑을 보낸 사람과 사람 사이로 이어져, 커피가 액체의 미학을 압도하는 지존의 지위에 오른 결과로 나타났다. 이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커피의 힘이 세이렌의 유혹과 연결되고 있었으니, 힘은 곧 끌림과 몰입으로 귀결되더니 마력으로까지 격상되기도 했다. 이는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했던 살로메나, 적장의 목을 자르던 유디트만큼 치명적으로 양방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오디세우스나 오르페우스가 이 유혹으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왔기 때문인데, 목적을 이루지 못한 세이렌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또한 이에 따라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커피민국

 

여기에서 스타벅스가 심볼 마크로 채택한 세이렌은 유혹의 상징성을 그대로 커피에 접목했던 사례로 매혹의 힘을 빌린 신화처럼, 열정은 나아가서 사람을 미치게 하는 과정까지 기대한 듯하다. 특히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이 영원불멸의 검은 매혹은 커피갤러리를 탄생시켰고 관광업계까지 커피 투어라는 상품을 내더니 콜롬비아까지 날아다닌다. 이 매혹의 힘이 당도한 한국은 커피민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는데 커피 시장 규모로 본 한국은 2021년 기준 약 6조 원으로 세계 3. 4위 일본과 시장 규모는 비슷하다. 하지만, 인구는 일본의 절반이어서 그만큼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이 배가 되는데 인구 100만 명당 커피 전문점 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1384개로 일본 529, 영국 386, 미국 185, 중국 71개 등 다른 나라를 압도한다. 중독성이 강한 만큼 파급력도 막강하다.

 

어쩌면 이 힘은 마법에 더해 중독성까지 함유하고 있었던 것인데, 코엑스에서 열린 '2023 서울 커피엑스포'에서는 너도나도 써 붙였다. 하나같이 다른 글씨로 "현지에서 신선한 원두를 공급받아 전문적인 로스팅 기술로 최상의 커피 맛을 살렸습니다"라고. 그렇다면 한국에선 모두가 최상의 커피를 즐기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 느낌 또한 편향성이나 비아냥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매혹이 느껴지지 않는 대상에서 작가의 열정이 발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감각으로부터 발견이라는 계기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가령 원두 60알을 손수 골라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마신 뒤 작곡에 임했다는 베토벤이나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추출해 마신 브람스 등에 커피는 영감을 주는 촉매제였음을 부인할 수 없음이다. 결국 같은 맥락으로 예술가들의 창작혼을 불태우게 한 각성제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 에너지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고 해도 오정동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그렇다고 이 지역이 힘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팜므파탈의 유혹에 강한 정서 때문에 입점을 꺼리는 것인지. 기어이 오정구에는 스타벅스 원종DT점이 들어섰다. 이미 몇 척의 배가 정박해 있다. 어디까지 빠졌을까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 박기동 기자